매종 마르틴 마르지엘라

마르틴 마르지엘라의 변형 셔츠

그의 옷들은 숨어있다가 갑자기 뛰어나와 '서프라이즈' 하는 생일파티와 비슷하다.

생각지도 못한 아이디어로 사람들에 즐거움과 혹은 경외감 까지도 들게 해주는 그의 상상력은 그 끝을 알 수 없는 것 같다.

그리고 그 아이디어를 실제로 실체화 시키는 그의 능력.

이 런 것들이 그들 현재 최고의 디자이너 중 한명으로 있게 해준것 같다.



입는 법을 적어둔 탭 역시 그의 재치를 보여준다


그의 다른 작품들


-_-;

어찌보면 아무 것도 아닌것 같은데......


양말에서 브라우스로..... 변신로봇도 아니고.-_-;

by 소뱀뱀 | 2007/10/15 18:25 | 트랙백 | 덧글(0)

An Inconvenient Truth

이 다큐멘터리를 처음 접한건 2006년 10월쯤 Northeastern 에서 공부할때 선생님이 틀어줘서 보게 되었다. 엘고어에 대해서는 알고

있었지만 그저 클링턴정부의 '부통령' ,' 대선에 도전했다가 실패한 사람' 정도였다.

이 다큐 도 사실 별 감흥 없었다.일단 자막이 없는데.......-_-;


1년이 지난 지금 그가 이 다큐멘터리로 노벨평화상을 받았다.

천성이 팔랑귀라 부랴부랴 어둠의 통로를 통하여 다운 받았다.




앨 고어의 강연 솜씨는- 어쩌다 선거에서 졌는지 의아할 만큼- 탁월하다. 명쾌하고 알기 쉬우며, 영상자료와 통계를 적재적소에 끌어들인다.

<불편한 진실>은 그래프가 얼마나 무서운 이미지가 될 수 있는지 증명하는 다큐멘터리다. 연평균 기온을 짚은 꺾은선 그래프가 이산화탄소 함량의 그래프와 베낀 듯이 나란한 선을 그리는 화면은 충격적이다. 또한 화면을 넘어 하늘을 찌를 듯한 그래프의 모습은 다큐를 보는 우리들에게 충분한 경고를 주고 있다. 그런가 하면 <불편한 진실>의 가장 강력한 감정적 호소는 조야한 3D애니메이션 예화에서 튀어나온다. 얼음대륙이 녹아 사라지면서 발 디딜 땅을 잃은 북극곰 한 마리가 하염없이 헤엄친다. 간신히 뗏목만한 빙하를 발견하는 흰 곰. 그러나 앞발을 얹자마자 얼음은 두 동강, 네 동강으로 조각난다. 실망한 곰은 다시 탈진한 팔다리를 젓지만 바다가 너무 넓다.


물론 우리는 앨 고어가 미국 부통령으로 재직한 1990년대의 8년 동안 어떤 변화를 창조했냐고 온당히 따질 수 있다. 그러나 앨 고어는 당시 정책의 공과를 해명하는 데에 시간을 쓰지 않고 미국인의 부끄러움과 정의감에 직접 호소한다. 어찌보면 존 무어의 방법과도 비슷하다. 문제를 제시하고, 그 원인을 찾아가는 방식이 존 무어의 다큐를 보는 듯 했다. 가장 큰 차이점이라면 존 무어는 좀 더 거친 방식으로 이용했다는 것 정도?
세계 인구의 5%를 차지하면서 무지막지한 에너지 소비로 이산화탄소 배출량은 무려 30%를 차지하는 미국은 2001년 자국 산업보호를 명분으로 온난화 방지를 위한 국가간 이행협약 교토의정서에서 탈퇴했다. 앨 고어는 본인이 목격한 ‘내부 메모’를 증거로 들어 지구온난화 위기를 엄연한 과학적 사실이 아닌 토론 가능한 하나의 견해로 격하하려는 에너지 산업과 미국 정부의 전략이 미디어의 눈을 멀게 했다고 힘주어 말한다. <불편한 진실>은 한장의 팸플릿 같은 영화다. <불편한 진실>이 영화여야 하는 가장 중요하고도 유일한 이유는 대량복제가 가능하다는 점일 것이다. 따라서 <불편한 진실>은 가능하면 빨리, 그리고 많이 공중파 TV로 방영되고 동영상이 보급돼야 마땅한 영화다. 메가폰이기를 자처한 영화답게 <불편한 진실>은 1분 1초가 아깝다는 듯 엔딩 크레딧 가득 무수한 실천 사항을 나열한다. “나무를 심으세요.” “친환경 제품을 구입하세요.” “대중교통을 이용하세요.” “환경 공약을 내건 후보에게 투표하세요.” “그런 후보가 없으면 직접 출마하세요.” 결국 개인의 어깨에 짐을 얹는 결론인가 화도 치밀지만 그보다 발등의 불을 꺼야겠다는 다급함이 앞장선다. <불편한 진실>을 보고 나와 내딛는 땅은 여느 때와 달리 갓난아이의 살처럼 연약하고 애처롭다. 1968년 아폴로 8호가 우주에서 찍은 지구의 전경은 인류 사상 가장 많이 복제되어 널리 유포된 사진이라고 한다. 다시 들여다본 그 이미지는 여전히 아름다우나 더이상 장엄하지는 않다. 지구는 창백하고 푸른 점일 뿐이다.

글 출처 : 한겨례





이 다큐는 지구에 몸을 담고 있는 사람이라면 한번쯤은 봐야 할 것 같다. 비록 당신이 환경에 관심이 있든, 없드,

일단 보고 나서 이야기 하고 싶다. 무엇이 가장 중요한 것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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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사이트
http://www.climateprotect.org/

http://www.enet.or.kr/v2/

http://www.climatecrisis.net/thescience/

by 소뱀뱀 | 2007/10/14 22:34 | 트랙백 | 덧글(0)

시오노 나나미의 단순명쾌한 히어로들. 매직, 버드, 조던

로마인 이야기의 저자인 시오노 나나미가 1993년에 쓴 글입니다...

단순명쾌한 히어로들

속으로는 이기는 것을 좋아하면서도 그런 말을 함부로 표현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가지게 된 건 언제부터일까. 사람들이 스포츠를 좋아하는 것은 경기 세계에서 아무런 거리낌없이 승리하고 싶은 마음을 공공연히 표현할 수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현대의 불안을 반영하는 것도 좋지만, 그 때문에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추악하게 변해버린 영화의 주인공들에게 넌더리가 난 사람들에게 나는 스포츠 선수를 찍은 비디오를 권하고 싶다.
첫째, 그들이 단순명쾌한 승자라는 것. 둘째, 승리라는 하나의 목적에 모든 것을 집중하기까지 다방면에 걸친 기반 다지기가 불가결함을 알 수 있다는 것. 마지막 이유는, 아름답다는 것.
쓸데없는 움직임을 보이면 상대에게 지고 마니까 순수한 움직임만 남는다. 그게 너무 아름답다.
또한 역사를 사랑하는 나 자신의 성향 때문이겠지만, 진행 중에 가슴을 두근거리는 것보다는 다 끝난 다음에 그것을 바라보며 분석하는 쪽에 더 큰 즐거움을 느낀다. 그래서 여기에 등장시킬 인물도 이미 은퇴한 세 명의 스타 선수들이다. '악동' 바클리도, 팀으로서 최고의 악역을 담당하는 디트로이트 피스톤스도 재미있지만, 그 모든 것도 주역이 똑바로 성립하지 않으면 성립할 수 없다. 우선 멋진 주역을 등장시킬 필요가 있다.

매직 존슨

이 사람이 에이즈 바이러스에 감염되었다는 소식이 뉴스를 타고 전해질 때까지, 스포츠팬이 아닌 나는 이 사람의 존재를 모르고 있었다. 처음 그를 알게 된 것은 바르셀로나 올림픽 때였다. 그후 과거 시합을 담은 테이프 세 편, 그의 특집 한 편을 보고, 나는 비로소 이 사람의 에이즈 감염이 미국인에게 얼마나 큰 충격이었는지를 이해하게 되었다. 매직이라는 이름도 납득이 갔다.
그는 농구계의 '펠레'이다. 전성기의 펠레가 출장한 시합을 옛날에 한 번 본 적이 있는데, 신기(神技)란 바로 이걸 두고 하는 말이구나 하고 감탄했다. 모든 움직임이 너무도 자연스러웠다. 그러면서 정말 강했다. 매직 존슨의 움직임도 그냥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그렇게 강한 그는 미남은 아니지만 호감이 가는 얼굴을 하고 있다. 그의 웃는 모습을 보고, 그의 의지에 찬 선언을 듣고 있노라면, '미국은 역시 대단한 나라'라고 생각하고 만다. 나조차 그가 에이즈로 죽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그는 이렇게 그를 접한 사람들을 '감염'시키고 마는 힘과 매력을 가지고 있다. LA레이커스가 미국 농구계의 패자가 된 것도 팀 전원이 존슨의 '매직'에 감염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게다가 그의 '매직'은 밝고 자신감에 가득 차서 너무도 미국적이다.
팀 메이트 한 사람에 의하면, 시합에 진 후 매직은 팀 전원 앞에서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내일은 내가 자네들을 약속의 땅으로 인도하겠어."
모세처럼 그런 말을 한 다음 날이면 반드시 이겼으니까, 참으로 유쾌한 일이다. 리더란 이래야 한다.




같은 리더라도 래리 버드는 좀 다른 것 같다.
처음 이 사람의 특집 비디오를 보았을 때는 그렇게 강한 인상을 받지 못했다. 아마도 내가 알고 있는 농구는 매직 존슨이나 마이클 조던보다는 래리 버드의 농구였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그의 모든 시합을 수록한 테이프 두 편을 보고 완전히 바뀌고 말았다. 역시 그 사람을 철저히 알기 위해서는 그 사람이 나가서 싸우는 '전장'을 보는 것이 가장 좋다. 인터뷰나 평론으로는 알 수 없다.
매직 존슨의 밝은 낙천성이 로스앤젤레스에 어울리는 것처럼, 래리 버드의 침착함과 끈질긴 의지력과 강한 책임감은 그가 속하는 셀틱스의 근거지인 보스턴에 어울린다. 게다가 1980년대 미국 농구계는 매직 존슨과 그가 양분하고 있었으므로, 하버드나 MIT 교수들마저 열광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어떤 영화에서 하버드 교수 집이 화면에 비치고 있었는데, 벽에 등번호 33의 셔츠가 걸려 있는 것을 보고 웃었다. 33이란 보스턴 셀틱스의 래리 버드의 등번호이다. 게다가 이 사람은 백인. 거의 흑인밖에 없는 육상경기에 비해, 수적으로는 떨어질지 몰르지만 백인이 멋진 활약을 보여주는 것도 미국 농구계의 유쾌한 부분이다. 경쟁은 모든 요소가 경쟁을 벌여야 재미있다.
매직 존슨이 모세처럼 선두에 서면 팀 메이트 전원이 마치 마법에 걸린 듯이 그 뒤를 따르고, 그래서 이겨버리는 타입의 리더임에 반해, 래리 버드는 팀 전원과 함께 걸으면서 그들의 힘을 끌어내는 타입의 리더인 것 같다. 그의 패스는 너무 멋지다. 결코 혼자서 공을 독점하지 않는다. 플레이도 정말 깨끗하고 정정당당하다. 그러니 팀 메이트의 존경을 받는 것도 당연하다. 그 결과로 이쪽도 승리를 얻는다. 보스턴 시민들은 그를 기려 길 하나를 래리 버드 로(路)라고 부르기로 했다.



이 사람의 움직임을 한 마디로 표현한다면, 미(美). 셋 중 가장 미남이지만, 비단 얼굴만 아름다운 게 아니다. 시합 중의 움직임이 너무 아름답고 역동적이다. 마치 젊은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활약을 눈앞에서 보는 것 같다.
나를 농구에 눈뜨게 한 것은 '악동' 찰스 바클리가 속해 있는 피닉스 선즈와 마이클 조던이 이끄는 시카고 불스의 결승전을 텔레비전에서 본 이후이므로, 누구를 더 좋아하느냐고 묻는다면, 역시 마이클 조던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게다가 그에 대해서는 냉정한 분석에 앞서 현재로서는 그냥 감탄할 수 밖에 없다.
롱슛이 특기인 래리 버드, 어디서 던져도 들어가버리는 매직 존슨에 비해, 마이클 조던은 골밑 승부를 즐기는 것 같다.
라이벌에 대해서도 실로 공정하고 따듯한 평가를 내리는 매직 존슨이나, 시합에 진 이유를 절대로 상대방 탓으로 돌리지 않는 래리 버드의 신사적 태도에 비해, 마이클 조던은 촌철살인의 한 마디도 서슴지 않는 면이 있다고 한다.
"내가 공을 잡는 순간, 적은 사냥감으로 변하고 만다."
마치 승리에 도취하는 젊은 한니발을 보는 듯하다. 경기장을 일인극의 무대로 만들어버리면 안 되겠지만, 시카고 불스를 세 번이나 챔피언으로 만들었으니 불평할 수도 없다. 승부의 세계는 산뜻하다.

세 사람을 관찰하다보니 한 가지 공통점이 있음을 알 수 있다. 바로 승리에 대한 처절할 정도의 집착이다. '그들은 프로이니까 승리가 바로 돈으로 직결되니 그럴 수밖에'라고 생각해서는 그들의 기쁨을 함께 나눌 수 없다. 이긴다는 것은 멋진 일이다. 멋진 일이므로, 그것을 얻기 위해서는 고생도 마다하지 않는다. 세 사람 다 어느 누구보다도 많이 연습하고, 어떻게 하면 더 강해질 수 있을까 생각하고, 곤경에도 굴하지 않고 극복해 나가는 의지를 가지고 있음에 분명하다. 누군가 말했다. '천재란 고생해야 한다는 것을 아는 사람이다'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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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매직 져지 입고 보스턴 거리 돌아다니가 취객에서 한 소리 들었던 것이 기억 난다.

"다시는 그 져지 보스턴 에서 입지 마라. 져지가 입고 싶으면 버드껄 사라!"


by 소뱀뱀 | 2007/10/14 02:17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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